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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침에] 생일이 뭐길래

동년배의 여자들과 매주 월요일 밤에 줌 미팅이 있다. 한 명의 인도자와 다섯 명의 팀원이다. 성경 공부를 주로 하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 아니면 평범한 일상도 나눈다. 모임이 끝나면 떠도는 소문을 들었다기보다 작은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다는 사실에 약간 흥분이 되곤 했다. 물론 여기서 들은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하지 않는다.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단톡방 모임의 리더가 생일 축하한다며 축복의 문구와 덕담을 날렸다. 잠시 후, 한 사람이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핑크 케이크 이모지를 보내서, 고맙다고 답례했다. 모두가 축하하지 않았지만, 사소한 일이라고 치부했다. 더는 마음에 담지 않았다.   생일날이 평상시처럼 지나갔다. 달리 별다른 계획이나 약속이 없어서, 가족과 생일 케이크를 함께 먹으며 보냈다. 생일은 특별한 날이지만, 나의 전유물이 아니기에, 또 ‘계절이 한 바퀴 돌았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다음 날이 되자, 세 사람이 축하 메시지를 안 보낸 것이 떠올랐다. 섭섭했다. 그동안 위로와 공감, 조언 등 그냥 함께 있어 힘이 되어주던 모임이어서, 아니면요즘에 직장 일로 예민해서 무리한 기대를 했는지 모르겠다. ‘한 사람은 상중이라 경황이 없겠고, 두 사람은?’으로 시작된 사고로 마음이 꼬여갔다. 약간 마음을 열어놓은 이들에게 받은 충격은 예상 밖으로 컸다.   어차피 적잖이 각각 살아온 날이 다른데, 무슨 기대를 했을까. 한 살을 먹어가는 위로였을까. 가치관, 성격, 살아온 생활 환경이 판이한데, 같은 관점과 사고방식을 요구하는 자체가 의미 없는 일이다. 암만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도, 다 터놓을 수 없는 인생사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팍팍한 타인의 삶이나 상황을 과연 내 능력으로 이해할 수 있을는지.   하긴 축하 메시지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하다. 남의 생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 보내지 않은 적도 있다. 하루 종일 몇 명이 메시지를 보냈느냐는 데이터로 나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서 흘려보내기로 했다. 내 행복의 결정권을 누군가에게 맡겨두고 싶지 않았다.   또 하루가 지났다. 한 사람이 생일 축하한다고, 자꾸 잊어버려서 지금 보낸다며, 늦게 해서 미안하다는 카톡을 보냈다. 괜찮다며 기억해 줘서 고맙다고 답장했다. 세월의 흐름을 느끼며 넓어지는 감정은 아마 여유로움이지 않을까.   명심보감에 이런 말이 있다. 상식만천하(相識滿天下) 지심능기인(知心能幾人). 얼굴 아는 사람이야 세상에 가득해도 내 마음 알아줄 이는 과연 몇 명인지. 아직도 내가 세상에 나온 날을 축하해 주는 사람이 셋이나 있으니, 그동안 헛살지는 않았구나 싶다. 이리나 / 수필가이아침에 생일 생일 케이크 축하 메시지 핑크 케이크

2025-04-15

[삶의 뜨락에서] 작고 좋은 것

 살면서 누구나 깊은 슬픔에 빠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미국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 ‘A small, good thing(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외아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는 젊은 부부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던 부부는 외아들의 생일을 앞두고 생일 케이크를 빵집에 주문한다. 그러나 아이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고 혼수상태에 빠져 결국은 죽게 된다. 이를 알 리 없는 빵집 주인은 밤마다 케이크를 찾아가라고 독촉 전화를 걸었다.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찬 부부는 빵집 주인을 찾아가 화를 마구 퍼붓는다.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빵집 주인은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소. 내가 얼마나 미안한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거요. 나는 빵장수일 뿐이라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일의 변명이 될 순 없겠지요. 그러나 진심으로 미안하게 됐습니다”라고 말하면서 본의 아닌 실수로 커다란 상처를 준 낯선 부부에게 미안함과 연민을 갖게 된 빵장수는 부산하게 오븐에서 빵을 끄집어내며 그가 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방식으로 도움을 주려 애쓰고 있다.   “내가 만든 따뜻한 롤빵을 좀 드시지요. 이럴 때 뭘 좀 먹는 일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된다오. ” 그 롤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갑자기 당한 지독한 슬픔으로 허기를 느끼지도 못하고 있던 부부는 갓 구운 따뜻한 빵 냄새를 맡고 한입 가득 베어 문다. 상가 전체가 시커먼 어둠에 휩싸인 가운데 홀로 불을 밝힌 작은 빵집에서 이제 막 지독한 슬픔을 맛본 부부를 향해, 처음부터 슬프게 살아왔던 빵집 주인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부부는 자신들의 삶에 들이닥친 불가해함에 위로를 받는다.     레이먼드 카버의 짧은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우리가 서로를 진정으로 알거나 우리의 삶을 완전히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우리의 시도는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작고 좋은 것’일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나의 영혼도 따스해지고 있었다.   몇달 전 뉴스에 나온 이야기이다. 아내가 사망한 후 깊은 우울증에 빠져있었던 82세의 단(Dan)은 어느 날 동네 슈퍼마켓에서 만난 4살짜리 소녀, 노라로 그의 모든 삶이 바뀐다.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장을 보고 있던 그에게 다가온 노라는 “안녕, 까다로운 늙은이, 오늘이 바로 내 생일이야”라고 말했다. 그리고 과감하게 그에게 포옹을 요구했다 한다. 엄마에게 새 친구와 함께 사진을 한장 찍어달라는 부탁까지 했다. 이렇게 행복한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말하는 그의 입술은 떨렸고 주름진 얼굴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4살짜리 노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살리는 일을 했던 것이다.     레이먼드 카버는 멍청하게 보일지 모르는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작가라면 가끔은 소박한 경이로움 앞에 멈춰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보여주는 삶의 단면들로부터 우리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의 제안은 우리가 모두 우리의 작은 것, 통제할 수 없는 것에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작고 좋은 것”이라 한다.   하늘은 뿌옇게 흐렸고 눈이 펄펄 날리는 크리스마스 이틀 전, 뉴욕에 첫발을 내디뎠던 오십 년 전의 일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낯선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막막한 나에게 아파트 창문마다 빨간 포인세티아가 장식되어 있고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나에게 “힘을 내요”라고 격려해주는 것 같았다. 크고 위대한 것에만 익숙해진 우리에게 레이먼드 카버는 ‘←A small, good thing’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 해를 보내는 마지막 달, 평소에는 당연하다고만 생각하고 무심하게 스쳤던 사소한 일들이 주는 긍정적 힘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본다. 이춘희 / 시인삶의 뜨락에서 작고 생일 케이크 작가 레이먼드 빵집 주인

2021-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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